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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Etiquette

김해동 | 2012.10.09 15:05 | 조회 3260
해외에서 근무하는 Global기업의 CEO로서 한국인 Businessman들이 갖추어야 할 Global Etiquette에 대하여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내일이 원고 마감일인데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였다.
 
허구한 날 남편의 식탁예절에 대하여 잔소리를 하는 집사람 입장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남편이 주요 저널에서 Global etiquette에 대한 원고 청탁까지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포복 절도할 일이다.
 
나도 그렇다. 명색이 유서 깊은 유럽의 대기업에서 20여 년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나라 밖에선 그룹내의 유럽인 임원들, 안에선 동료 CEO들의 객관적 검증(?)을 받은 사람이 집에만 들어가면 반바지 차림에 식탁에 앉아 아이들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수저를 든다. 아직 수전증이 들 나이도 아닌데 찌개가 맛있는 날은 식탁바닥에 국물이 흥건하다. 내가 젊었을 때도 밥알을 흘렸던가?        엊그제 친지들 부부동반 모임에서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집사람 자리 잡기 편하게 뒤에서 의자를 빼주던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팔자에도 없는 Global기업의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책임을 맡고 있으나 필자는 완전 토종이다. 잦은 해외 출장이야 직업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50여 년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서양의 예절이 몸에 배었을 리 없다.
 
외국에서 외국인들을 경영해야 하는 입장으로 Business Etiquette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자부를 하고 있지만 요즘에도 식사를 겸하는 모임에서 이야기할 때 느닷없이 입에서 파편이 튀어나온다. 이런 황망한 일이 없다.
 
아무리 혀에 침을 묻혀 입술을 닦고, 조심스럽게 와인 잔에 입술을 대도 왜 내 잔에만 유별나게 선명한 입술자국이 남는지? 도대체 왜 유럽사람들은 음식을 입으로 넣는데 입술에 음식물이 묻지 않는지?
이 친구들 시끄러운 와중에 내 귀에 입을 대고 열심히 이야기한다. 소리를 지르는 수준인데 그 고함에 습기(?)가 전혀 없다. 내가 그 정도 톤으로 떠들면 반은 침이다.
 
아직 한국에서 근무할 때 틈만 나면 Globalization을 외치며, Wine전도사인 냥 깔끔을 떨었어도, 역시 자리에 펑퍼짐하게 앉아 삼겹살 굽고, 고추에 된장 듬뿍 발라, 입가에 온통 묻히며, 파편을 튀기며 소주잔을 돌려야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토종 한국인이다.
 
 
한국의 예절과 서양의 예절이 중심이 된 Global 예절은 서로 절충이 불가능하다. 역사, 문화, 철학이 다르기 때문인가?
 
우리는 아름다운 나눔의 문화를 가졌다. 식사예절을 보자. 모든 차림을 한번에 모두 함께 올려놓고 함께 나눈다. 할머니가 맛있는 소고기 한 점을 들어 사랑스런 장 손자의 밥그릇 위에 슬며시 놓아 주고, 장모님이 닭다리를 손으로 뜯어 믿음직한 사위 입안에 넣어준다. 갓 들어온 새댁이 자상하신 시아버님을 위해 정성껏 잔을 채운다. 사랑이 식탁에 같이한 온 식구에게 넘쳐흐른다.
 
한편, 개인의 입안에 들어갔던 수저가 공공의 음식에 그대로 닿는다. 술잔이 마구 돌아간다. 입술에 묻어있던 음식물들이 잔에 묻어 잔과 함께 마구 돌아간다.
 
잔 받기를 사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랑, 존경의 나눔을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주의 문화의 서양인 입장에선 이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식구라는 개념에 대한 우리만의 끈끈한 이해가 있다.
 
Global 식사 예절에 의하면 식탁에서 소리를 내는 것이 터브시 되어있다. 예외가 있다면 코 푸는 것이 허락된다. 코 훌쩍거림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서양인들의 식탁에서 코 푸는 행태는 남녀를 불문하고 대단히 방자하다. 서양인 코에 대한 해부학적 설명까지 곁들여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설명들은 적도 있지만 우리 입장에서 거슬릴 수밖에 없다.
 
뜨거운 커피, 차들은 즐기지만, 우리처럼 계속 펄펄 끓는 음식을 땀을 흘리며 즐기는 민족은 많지 않다. 스위스인 치즈 퐁듀, 일본의 샤브 샤브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입안에 느끼는 뜨거움의 정도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입 천장, 혀를 데지 않고 국물을 삼키기 위해서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다 한들, 그 얼큰한 국물을 들이키고 ‘커~어 시원하다’ 소리 한마디 내지 못하면 그게 무슨 맛의 즐김이겠는가?  
독주 한잔 들이키고 저 밑 식도에서부터 나오는 ‘카~아’ 소리를 한번 못 내고 무슨 낙에 쓴 독주를 즐기겠는가?
 
음식의 가장 상위 맛은 발효식품에서 나온다. 한국의 된장, 간장, 고추장, 온갖 젓갈 류 무엇보다 김치, 일본의 낫도, 서양의 치즈 등으로 대표되는 발효식품. 이들의 공통점은 금방 친해지기가 어려우나, 일단 알고 나면 깊게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친해지기는커녕, 참기 어려운 냄새를 낸다.   
 
한국사람으로 유럽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세, 네 시간이 기본인데 아무리 더워도 정장 상의도 벗을 수 없다. 보통 다국적 기업의 이런 공식 만찬은 전세계 각 대륙, 각 나라에서 온 모르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는 것이 일반인데, 서로 통성명하고, 부부 인사하고, 각자 나라 소개, 개인 소개를 끝냈는데 아직 전체요리도 안 나왔다.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에 대하여 궁금할 것도 없는데, 식사 예절 신경 쓰랴, 내 Social English 신경 쓰랴, 각 나라 마다 다른 영어발음 이해하려 신경 쓰랴, 과거에는 그나마 분위기 망치지 않을 수준에서 그냥 앉아 있으면 되었는데, 이제는 대륙을 책임지고 있는 중역으로서 테이블의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니 난망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체요리에 수프를 먹고 나면 이미 포만감이 온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뜨는 이태리 요리코스라도 준비했다면 주요리(Main) 전에 나오는 파스타로 이미 한국사람들은 끝이다. 아무리 양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사람도 느끼함에 여기까지가 한계다. 중간에 나오는 샤베트 덕분에 느끼함을 약간 억누르고, Main를 어찌어찌 어렵게 넘기고 나면 이젠 달짝지근하고, 더욱 느끼한 디저트가 나온다. 커피로 다시 이 느끼함을 달래야지 라고 마음먹었다면 오산이다. 에소프레스도 안 시켰는데 일반 커피가 탕약보다 쓰다. 한 모금 삼키고 내려 놓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제 대화의 밑천도 다 떨어지고, 속 울렁거림을 참고 앉아있을라 치면, 웨이터가 냄새를 풍기는 각종 치즈가 가득 담긴 카트를 밀고 온다. 이때 그 좋다는 케비아가 나와도, 거위간이 나와도 별 반응이 없던 점잖은 유럽인들이 유난을 떤다. 양 손을 비비며 “Oh my cheeses~!!!”. 이제 한국사람은 한계를 넘긴다. 우아한 분위기 연출은커녕, 짜증이 넘쳐 그 느끼함에 호들갑을 떠는 유럽사람들에게 증오심 넘친 전의(戰意)마저 느낀다.
 
느끼함을 다스리는 최고의 식품이 바로 김치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인생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현재는 막역한 친구로 지내는 과거 상관이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유명한 ‘살바’ 라는 스키장으로 초대했다. 마침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선배 한 분도 함께 하였는데 어느 때처럼 김치 한 통을 싸오셨다. 우리끼리만 있을 때 냄새 안 피우려고 호텔 베란다에서 즉석 라면과 함께 즐겼던 터다. 우리끼리만 따로 김치를 즐길 시간이 없어 마지막 날까지 한 통이 고스란히 남았다. 과거 한국에 방문했을 때 김치를 유난히 즐겼던 독일 친구가 그 호텔 몇 십 년 단골 입장으로 주방장을 불러 김치 통을 내어 주며, 모든 테이블에 골고루 나누게 하여 그날이 김치의 날이 되었다. 그 고급 호텔 손님 중 아마 한국과 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리라. 모든 손님들이 우리 테이블에 엄지를 내밀어 감사 표시를 했다. 그날의 김치냄새는 숨어서 먹을 때 감추고 싶었던 그 역한 냄새가 아니었다.
 
인도사람들은 오른손을 이용하여 식사를 한다. 찰기가 없는 쌀밥을 한 손으로 뭉쳐 입에 넣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노란 카레국물, 빨간 닭의 양념 등이 온 입술, 손가락에 가득 묻어 휴지나 손수건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일본 스시를 맨손으로 먹는 묘미를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회의 싱싱한 탄력과 쌀밥의 알맞은 찰기를 손으로 먼저 느끼고, 입으로 가져가는 묘미. 같이 손을 쓰는데 한쪽은 미개해 보이고, 한쪽은 경지에 오른 식도락가의 맛의 즐김이란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역시 국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장담컨대 몇 십 년 뒤 동양이, 인도가 세계의 중심에 가까이 갈 때쯤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유행하는 날이 반듯이 온다.
 
 
비행기 안에서 한국사람은 신발을 벗고 있다. 가끔 양말까지 벗어 제킨 사람들도 자주 본다. 서양인들 눈에 별로 유쾌한 모습은 아니다.
한국사람이 집으로 돌아와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일이다. 비행기를 따고 제일 먼저 하는 일 역시 신발을 벗는 것이다. 꽉 낀 구두에 단련되고, 집안에서 조차 구두 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 서양인의 발보다 짚신에 어울리는 한국인의 발은 자유에 대한 집착이 훨씬 크다. 그렇다 하드라도 사무실에서 슬리퍼신고 손님 맞는 것은 같은 한국인 입장에서도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다.
 
해외에서 옷깃만 스쳐도 ‘Excuses me’을 연발하는 배려가 처음 얼마 동안 편해 보이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아니 사람이 살다 보면 부닥치고, 밀치고 하며 함께 섞여 사는 것이지 웬 유난이야?’하며 뒤통수를 노려 보는 나다.
 
우리는 같이 닿고, 서로의 속에 들어가 함께 섞이고, 함께 즐기고, 함께 아프고, 함께 나누며 함께 살아왔다. 같이 부딪기는 것이 정을 나누는 것이다. 정의 나눔은 감정의 나눔이다. 감정 이입이 되었는데 흥분이 안되겠는가? 흥분했는데 어떻게 침이 안 튀겠는가?
 
능력에 네 단계가 있단다. 이 공식에 예절을 대입해 보자.
첫째, 예절에 대하여 전혀 의식이 없는 것이다. 남이 어떻게 보던, 느끼던 전혀 알 바 없다. (Unconscious Incompetence)
둘째, 아는데 안 하는 것이다. 배짱이다. (Conscious Incompetence)
이제 예절을 모르는 사람, 적어도 Businessman은 없다. 꼭 예비군복 입은 신사들 같다. 아무데서나 널브러지고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린다.
세 번째가 의식적으로 잘하는 것이다, 몸에 배지는 않았으나, 예절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Conscious Competence)
마지막으로 무의식 중에도 잘하는 것이다. 이미 몸에 밴 것이다.
(Unconscious Competence)
 
서양에서 태어나, 오래 산 한국사람들은 서양의 예절이 몸에 배었다. 아니 서양의 가치, 도덕, 문화가 정신과 몸에 밴 것이다. 다른 가치,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은 그 다른 예절을 흉내만 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 Etiquette에 Unconscious Competence단계에 올라가는 것은 가능 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의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몸에 밴 서양인들을 따라 잡을 수는 없다. 서양인들 보다 두 배, 세 배 힘을 들여도 그 근처에도 가기 어렵다. 아무리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본토 발음을 못 따라가는 것과 같다.
 
그저 그 기본을 이해하고 거기에 충실할 다름이다. 서양예절의 기본은 자기존중이다. 자신을 존중해 달라는 전제하에 타인을 존중해 준다. 내가 상대방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가 전제된다. 내가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은 나에게도 예의를 갖추어 달라는 의미이다
 
반면 우리예절의 근간은 남에 대한 배려이다. 나의 희생까지 마다 않는 거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나눔이다. 무의식 중에도 나를 낮춘, 상대를 위한 배려는 지순(至純)의 예절이다.
 
단지 오랜 기간 일제통제를 받고, 민족을 서로 죽일 수 밖에 없는 전쟁을 치르고, 우매한 우리민족이 둘로 갈라져 두 이데올로기의 선봉이 되어 서로를 원수로 삼아 반세기를 지냈고, 연이은 군사정권, 타락한 정치아래 도덕의 상실로 인하여 예절은커녕 그 착한 우리 민족의 인간성마저 말살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세계 최빈국에서 일인당 국민소득 만불,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안 우리는 너무 바빴다. ‘빨리 빨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인권, 자유, 민주주의, 존중, 예의 이 모든 것들을 희생했다.
 
국민소득 2만 불의 시대는 도덕 그를 바탕으로 한 문화의 시대이다. 도덕 경영이 기업 생존(Sustainability) 경쟁력이 되고, 높은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을 정하고 그리고 예절이 한 개인의 경쟁력을 높인다.
 
다시 만들 것도 없다. 본시 좋은 우리의 나눔의 예절이 있다. 다시 찾아오면 된다. 가장 한국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자동차와 전자를 대표로 여러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선전이 눈부시다. 월드컵 등으로 알려진 한국의 위상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동남아에서는 한류의 영향까지 겹쳐 일본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높은 대접을 받는다. 본시 대접을 받으면 옷 매무새도 다시 고치고, 자세도 추스르게 된다. 그 위에 우리회사 아시아 태평양 지역 본부는 한국인 사장까지 얻었다. 우리의 경쟁력, 우리의 가치, 우리 고유의 예절이 Global에 한걸음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2005, 08, 03 용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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