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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공간

김해동 | 2012.10.09 15:15 | 조회 2218

이 나라가 한때 고요한 아침(Morning Calm)의 나라로 불렸던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하얀 옷을 입고, 여유를 즐기는 백의 민족이라 했다던가?
그곳의 양반은 비가와도 뛰지 않는다 했던가?
그들이 즐긴 예술에는 빈 공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던가?   
그곳에서 유교가 꽃을 피워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린 때가 있었다던가?
그래서 忠孝仁義禮가 존중된 때도 있었다던가?

전대통령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그분은 극적인 삶을 사셨고, 그것을 더욱 극단적으로 마감하셨다.
그분의 삶과 죽음에 고요나 여유 같은 틈이 안보이듯이, 이 나라에는 언제부터 빈 공간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극단이 온 나라를 차지하고 있다.


검찰이 정의의 표상인양 설쳐대며 전직 대통령을 조사하던 것은 보기에도 부담스러웠다. 대통령 재임 중에 사건을 파헤쳤으면 비록 그것이 그들 본연의 임무라 하더라도 자랑스럽다 할만하다. 재임 중에 힘이 무서웠든, 면책특권 때문이던 밝혀내지 못했다면 부끄럽게 여기고 겸손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 나라 최후의 정의를 지키는 이들의 최소한의 도리다. 그랬으면 전임 예우를 했다, 안 했다 의 문제로 시끄러울 이유도 없다. 이건 영락없이 힘 빠지기를 기렸다가 달려드는 하이에나와 다른바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책임자가 사과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더니 수사까지 종결한다니 이건 또 무슨 논리인가?


봉하마을에 마련된 분향소에 문상 온 사람들을 막고 행패를 부려 일부는 차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이 너무 슬퍼 약간 지나쳤다고 애교로 봐주자. 더 많은 정계, 학계 엘리트지지자들이 비리 조사를 받다 자살한 전 대통령을 마치 순교한 성자로 만들고, 대단히 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감상에 젖어 동조하자,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입도 벙끗하지 못하게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이 극단적인 상황을 나라 밖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방법이 없다.

이 극단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 세계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낡아빠진 좌, 우 Ideology가 유일하게 한국에서 극단으로 치우쳐 극우, 극좌로 나뉘어 머리 터지게 싸우는 뜨거운 이슈다. 그 한쪽 끝에 있는 북한은 핵실험에, ICBM발사에, 서해안 도발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극단적인 일은 다 벌 릴 모양이다.


도대체 21세기에 지구촌 한가운데 사는 오늘 좌 우는 뭐며, 보수와 진보는 다 무엇인가? 정치인들과 그를 받쳐주는 언론인들의 구시대, 허망한 Vintage타령에 지나지 않는다. 극단의 극치는 역시 이 나라 정치이다. 정치는 타협이라 했건만 이 나라 정치에는 타협이란 없다. 타협이 없으면 정치도 없고, 민주주의의 근원인 삼권분립도 있을 수 없다. 이 나라 정치에는 오직 대통령이 있고, 그에 반대하는 집단이 있을 뿐이다. 국회도 없고, 사법부도 없고, 내각, 행정부도 없다. 그 바쁜 대통령이, 그 바쁜 와중에 나라의 모든 잡다한 일을 다 알아야 하고, 간섭해야 하고, 모든 결론을 다 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항상 옳고, 최선이라고 믿고 수 십 년 된 베터랑 전문관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부동 자세로 서서, 반론 한번 피면 불경죄가 될까, 열심히 듣고, 시행하는 척한다. 그 정책이라는 것이 정권이 바뀌면 만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한데 말이다. 그것이 수 십 년 민주주의 연습을 통해 배운 유일한 교훈이 아닌가? 내가 전임자를 부정하면, 후임자가 나를 부정 할 수 있다는 간단한 이치가 이 나라 정치에서는 왜 이리 어렵단 말인가? 도저히 인정 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 하는 것이 그나마 한 때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렸던 나라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최소의 덕목이 아닐까?


1600년 동안 불교국가였던 대한민국이 불과 반세기만에 국민의 35%가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크리스천으로 바뀐 예는 전세계 역사를 통하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종교에 대해 약간의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면 그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서 바로 매장당하는 극단적인 사회가 바로 우리나라다.


대한의 낭자들이 LPGA를 접수하여, 한국여성의 우월성을 드높이며 우리를 뿌듯하게 했다. 그러나 기존 외국 프로골퍼 입장에서 보면 한국선수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골프는 삶을 즐기고 또 윤택하게 해 주는 좋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이제 골프는 더 이상 직업이 아닌 것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극단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2, 3류로 머물러 있던지, 한국선수들처럼 전 가족이 각자의 삶을 포기하고 골프에 목숨을 걸고 골프만 하든지.   


내가 태어난 해 일인당 국민소득 64달러의 세계 최빈국이 조금 잘 살아보겠다고 고요함, 여유로움 그리고 기본 예의조차 사치로 알고, 앞만 보고 악착 같이 달려왔기에 세계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오늘 날의 우리나라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안다.
국민 소득 만불 까지 그렇게 빨리 빨리를 외치며 빨리 왔다. 잘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더욱 극단적으로, 더욱 열심히 일만 해서 갈 수 있는 정상의 자리가 거기까지다. 남이 이미 만들어놓은 가치를 다른 경쟁자들보다 좀 더 빨리, 더 싸게, 더 잘 만들어 갈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다.


일인당 소득 만 불에서 이 만, 삼 만불 그 이상의 선진국으로 가는 것은 이제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이제는 남들에게는 없는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가치는 열심히 뛴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키어온 저력 위에 저만큼 제쳐놓았던 우리고유의 천천함, 빈 공간의 여유, 배려, 예 등이 바탕이 된 높은 문화가 얹혀지면 우리만의 창조가 태어날 것이다. 그 문화에서는 흑백도 없고 극단도 없다.


좌우 안보고, 독하게 일만 해서 단시간에 돈을 번 이들은 사람들을 벼락부자라 칭한다. 존경보다는 비아냥의 뜻이 함축되어있는 듯 하다. 아마 그 악착스러움으로 주의에 대한 배려는커녕, 욕심이 지나치고, 자그마한 성취에 도취되어 모든 면에서 옳다는 경박한 흑백논리를 젊잖게 꾸짖는 것이리라. 동남아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와 크게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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