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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전 - 불교의 가르침

김해동 | 2016.02.15 10:33 | 조회 3087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저 하는 것이 해탈이다. 성찰을 통하여 자기자신을 깨우치는 것으로, 자신을 깨우치면 우주만물의 법칙을 깨우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사고가 깊어지고, 지혜를 얻어 진리에 가까이 다가간다고 한다. 일견 모순된 설명으로 일반중생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화가 나면 화를 내는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약해진다고 한다. 괴로움은 좋고, 싫음의 감정욕구에서 나온다. 좋은 것을 못하거나, 거꾸로 싫은 것을 해야만 하면 괴롭고, 화가 난다. 그 감정은 이미 쾌, 불쾌의 느낌에서 온다. 괴롭고, 화가 나면 격정에 휘둘리고, 격정에 휘둘리면 말과 행동이 앞서게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결국 회한만 남게 된다.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은 기분이 들고, 느낌이 있을 때, 감정욕구가 생겼을 때, 격정에 휘둘렸을 때, 아하! 내가 지금 기분, 느낌, 감정, 격정에 휘둘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럼 왜 격정이 생겼는지, 왜 감정이 흔들렸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누그러져 다음 단계로의 감정진행을 자제하게 된다. 어려운 법문을 일상의 언어로 쉽고, 명쾌하게 풀어주어 친숙한 법륜 스님의 설명이다.

자신의 감정흐름을 인지하고, 절제하더라도 이미 화가 난 후고, 격정에 휘둘린 후다.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이 옳다는 기대가 어긋났기 때문이므로 자신이 옳다는 믿음이 없으면 화가 날 여지조차 없다. 아예 기대를 내려놓거나,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삼독을 비우면 화 날일도 없고, 평온한 상태가 되니, 그 상태를 해탈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는 그 심오한 깨우침을 얻고, 널리 알려 중생들을 구하려고 하니 그 당시 말과 글로 도저히 설명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불교 경론을 강설하는 법당을 무설전(無設殿)으로 칭했다고, 불국사 무설전 앞에서 종우 주지스님은 설명한다. 그 당시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던 부처님의 깨우침은 오늘날 사람들의 내면심리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지면서, 사람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중생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불교사상은 아직 너무 난해하고, 너무 멀리 있다. 불교학자로 알려진 서울대 심리학과 권석만교수는 불교에 관심이 있는 동료 심리학자에게도 불교는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면서, 불교학이 특수학문이 아닌 보편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불교용어의 현대화가 선결과제라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불교용어를 현대화하겠다고 했다.

권교수가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쉬운 심리학 용어로 풀어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나 나름대로의 이해를 위하여, 알아듣기 쉬운 법륜 스님의 설명을 뇌 인지공학, 심리학의 관점으로 정리해 본다. 

감정의 사전적 정의는 현상이나 일에 대해 일어나는 기분이나, 느낌이다. 법륜 스님도 감정이란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기분, 느낌, 노여움 등은 인간감정 변화의 결과이다. 따라서 화가 날 때 지켜보라는 대상은 자신의 감정이고, 내려놓거나, 비워야 하는 대상도 감정욕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두 가지 다른 체계로 사고한다. 무의식 중에 감정에 의하여 반응하는, 심리학에서 『시스템 1』으로 불리는 직관적 사고와 의식을 깨워 추론에 의하여 고도의 사고를 하는, 『시스템 2』로 불리는 의식적 사고가 그것이다. 시스템 I은 빠르게 반응해야 할 때 유용한 사고체계다. 인류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진화해온 수렵시대 야생에서는 위험을 빨리 감지하고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과거기억을 끄집어내어 빠르게 반복한다. 직관적 사고의 판단근거는 감정으로 유전자를 통해 받은 본능, 조상의 경험과 살아온 모든 직간접 경험들이 기억으로 녹아 직관으로 생각과 행위를 제어한다. 한편 시스템 II는 고도의 추론을 하는 만큼 집중해야 하니 에너지도 많이 들고, 느리고, 상대적으로 비효율적 사고체계다.

우리는 중요한 일을 의식을 깨고, 심각하게 숙고하여 결정한다고 믿고 있지만, 대부분의 판단은 무의식 중에 감정에 의한 직관적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시스템 I이 사고의 기본체계(Default)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의식을 깨워 시스템 II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사고는 항상 시스템 I으로 이루어진다. 의식을 다잡고 시스템 II로 전환해도 금방 피곤해 지고, 골치가 아프고, 산만해져 오래 의식을 붙잡고 있기 어렵다. 어려운 공부에 오랫동안 집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스템 I으로 돌아와 외부자극이 없어도 변덕스러운 감정의 변화에 따라 기뻤다, 슬펐다, 좋았다, 나빴다 하는 기분에 종일 휘둘린다. 그래서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결국 불교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시스템 I을 억제하여 감정에서 자유로워져서, 시스템 II를 활성화하여 몰입에 빠져 지혜를 얻고, 종국에 해탈에 이르는 것으로, 선정의 불교사전적 의미도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흔들림 없이 모든 생각이 하나가 되는 상태로 위의 해석과 다르지 않다. Brown Ryan(2003, p.823)도 마음 챙김은 자동적 사고, 습관 및 불 건강한 행동패턴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고 했다. 심리학에서 자동적 사고는 시스템 I의 다른 표현이다.

불교에서 활성화 하려는 시스템 II는 인간의 전유물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더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고체계다. 약 이백 만년 전에 생겨 유독 인간의 뇌에서만 크게 자란, 인간의 뇌로 불리는 신피질(Neo Cortex)의 작용으로 인간만이 시스템 II의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능력 덕에 날지도, 빨리 뛰지도 못하는, 생물학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시스템 I이 기본체계로 사고의 대부분을 관장하고 있는 사이사이 잠깐 활약했음에도 오늘날의 눈부신 과학발전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능력을 가진 시스템 II는 미래 지식사회에서는 누가 더 많이,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더 도덕적이 되고, 지혜로워 지고, 창의적이 되느냐가 정해진다.

시스템 II가 활성화 되려면 시스템 I이 잘 관리되고, 절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시스템 I은 포기하거나, 버려져야 될 대상이 아니다. 과거지향의 감정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어 혼돈을 주기도 하지만, 원래 인간이 빨리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본능의 충실한 대리자이자 희망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주는 삶의 원동력이다. 아픔과 괴로움조차 그 행위를 계속하면 생존에 지장이 있으니 그만두라는 감정의 고마운 경고다. 감정 특히 두려움을 주관하는 편도체가 제거된 원숭이는 겁 없이 나뭇가지 사이를 날라 다니다 떨어져 죽는다. 따라서 감정을 내려놓겠다는 것은 사회적응은 물론 인간이기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인간은 감정을 따르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감정을 거역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인간으로서 실현 불가능한 과정을 불교는 참선을 통해 도달하려는 듯하다. 참선에 정진하기 위해서 속세를 떠나 삶을 바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 지도 몰랐을 2600년 전의 부처님의 깨달음은 내려놓아야 할 생각과 집중해야 할 생각이 따로 있다는 이원사고체계가 전제된다. 그로부터 2600년이나 지난 후에야 William James Dual Process Theory 가설을 내놓았으나, 의식이 과학의 영역에서 설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Daniel Kahneman이 그의 연구를 집대성한 Thinking Fast and Slow 2011년 발간하면서 다시 주목 받고 있는 현대심리학에서도 사고에 관한 가장 최근의 이론이다.   

미지의 자연현상들이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에 의하여 하나씩 그 진실이 밝혀짐에 따라, 수 천년 동안 진리로 받들어진 종교의 교리들이 과학과 타협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있으나, 2600년 전의 석가모니의 깨달음은 현대 심리학, 뇌 인지과학이 뇌 인지, 사고의 비밀을 밝혀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불교에서 배워온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현대심리학이 불교의 지혜를 실증연구를 통해 증명한 경우는 그 외에도 여럿 있다. 시카고 대학 심리학교수, 첵센미하일리는 인간은 몰입할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실증연구를 그의 유명한 저서 Flow에서 상세히 소개했다. 불교에서 명상을 통해 몰입하여 평온을 얻는 것과 방법론만 틀리지 행복, 평온을 추구하는 목적은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 현대심리학에서 최근에 각광받는 이론으로 메타인지(Meta cognition)가 있다. 자기생각을 인지하는 능력으로, 지능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약 25%정도라면, 메타인지력은 40%의 높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타고난 지능과 달리, 메타인지력은 훈련에 의하여 높아질 수 있어 교육계가 주목하고 있고, 필자도 직원들의 메타인지력을 높여 업무의사결정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고, 수년간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 메타인지는 불교에서 자기 마음을 바라보라는 마음챙김(Mindfulness, Sati, )과 흡사하다. 물론 20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추구된 별개의 사고체계가 똑같을 수 없다. 추구하는 목적도 틀리고, 바라보는 주체의 입장도 틀린다. 그에 대한 비교논문도 많이 소개되었지만 생각의 과정을 객관화한다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메타인지의 효과는 증명되었고, 훈련에 의하여 그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졌으나, 어떻게 메타인지력을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유아교육에 머물러 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초보단계다. 2600년 동안 수많은 수행자들의 뼈를 깎는 고행을 통한 깨달음과 지혜가 담긴 불교의 마음챙김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불교의 가르침은 여전히 어렵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해탈에 도달한 몇몇 고승들만 누릴 수 있는 특혜인 듯하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중요해지는 현대사회생활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심리적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불교에서 위안을 찾을 텐데, 이들이 모두 출가하여 참선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불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을 때, 불계에서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드릴 것이 아니라, 심리학이든, 인지과학이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더 많은 현대인들을 포용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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